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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도영의 뷰포인트

학교폭력 이런 대처는 어떨까요?

by 사람과 직업연구소 2015. 8.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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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 폭력 예방 문제, 이렇게 하면 어떨까요?

 

결혼을 늦게 한 덕에 아직 아이들이 초등학생이다.

며칠 전 초등 1학년에 재학 중인 둘째 아들이 물었다.

아빠, 학교폭력은 나쁜 거지?”

그렇지.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

, OOOO가 나 등하고 옆구리 때렸어.”라고 했다.

 

(모든 아이들이 이렇게 웃을 수 있는 날들이 오면 좋겠습니다)

 

별 것 아닌 일일 수 있지만, 아빠 입장에선 요즘 말로 심쿵했다.

어린 시절, 나름대로 유교적 정리가 남아 있던 학교에서도 내가 경험했고 목격했던 폭력이 적지 않았던 탓에 안 그래도 허당끼가 작렬인 둘째가 마음이 다치지 않았을까 우려해서였다.

 

물어보니 같은 1학년 남자 애 둘과 몸싸움이 있었던듯했다. 이럴 때 부모가 난감하다.

어디까지가 폭력이고, 어디까지가 애들 장난인지가 애매하다. 아이도 기준이 왔다 갔다 한다.

일단 같은 상황이 더 일어나면 꼭 아빠와 엄마에게 얘기해 달라고 아이에게 다짐을 받았다.

 

언젠가부터 내 생각 속엔 학교 폭력에 관한 생각 하나가 뿌리 깊게 자라고 있다.

그것은 학교 폭력의 예방을 지금처럼 교훈식 전달과 처벌에만 의존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는 잘 사라지지 않을뿐더러, 가끔씩 TV를 보면 주먹 좀 쓰는아이들이 미화되는 모습마저 보이곤 한다.

 

학교 폭력 근절과 관련해 참고할만한 전례가 있다.

철학자 콰메 엔터니 애피아는 저서 <명예 규정>에서 영국의 결투 혹은 중국의 전족처럼 명예의식으로 유지하던 관행들이 사라진 이유가 도덕적 통찰력이나 법의 개혁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변화로 이러한 것들이 불명예스러운 행위가 되었기 때문이라고 주장했다.

영화 속에서 가끔 봤던 영국의 결투 문화는 일종의 모욕에 대한 정당방위 형태로 때로 사람까지 죽이는 결과가 발생하곤 했었다. 살인에 대한 처벌도 예전에는 없던 상황이라 이런 문제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됐었지만 결국은 이런 행위가 법으로 제지되고, 행위 자체가 불명예스러운 것이 되면서 차츰 사라진 것이다.

 

우리는 영화나 TV에서 곧잘 학교 짱의 문화를 오히려 은근히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보니 민감한 청소년들은 그 실체조차 잘 알지 못하고, 일진을 동경하기도 한다.

 

엄밀히 말해 힘으로 무언가를 압박하고, 괴롭히고, 거기다 소위 을 뜯는 행위는 대단히 치사하고 부끄러운 행위에 다름 아니다. 좀만 나아가면 반사회의 범죄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학교폭력의 대처방향도 그렇게 가야 되지 않을까? 아이들이 힘으로 누군가를 핍박하는 행위, 괴롭히고 물품을 갈취하는 행위는 아이들 표현으로 부끄럽고, 쪽팔리고, 모냥 빠지는것으로 더 부각시켜야 할 필요가 있다.

 

아이들에게 자기보다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것은 멋진 청춘이 할 짓이 아니다. 스스로를 쓰레기라고 광고하는 것에 다름 아닌 것이다같은 강력한 메시지를 줄 순 없을까? 아마도 현대의 반복적 매스미디어의 힘이라면 나는 이런 생각의 전환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확실히 남녀공학 같은 곳에선 학교폭력이 그나마 좀 덜하다고 한다.

 

부끄러움의 감정은 아주 오래된 인류의 유산이다. 타인의 시선에 민감할 때인 사춘기 청소년들에게 폭력행위에 대한 수치심 혹은 불명예스러움을 심는 노력을 이 사회가 해 나갔으면 좋겠다. 적어도 그것이 폭력에 대한 위협이나 하지 말자, 하면 안된다같은 교훈적 이야기보다 훨씬 위력이 있으리라 감히 확신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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