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역사 팩션(faction)은 꽤 흥미 있는 분야에 속한다. 어린 시절 팩션의 원조라 할 만한 삼국지에 빠져 지내며, 역사적 사실과 인간의 상상력이 결합해 만들어진 그 힘찬 생동감에 매료되곤 했다.
이인화의 영원한 제국은 오래전부터 보고 싶었으되 타이밍(?)을 잡지 못하던 작품이었다.
조선의 사실상 마지막 성군으로 알려진 정조의 죽음 하루 전날을 다루고 있는 이 이야기는 작가가 현대와 과거를 넘나들며 ‘취성록’이란 가상의 자료를 통해 상상의 날개를 붙여 끌어가는 형식으로 만들어진다.
형식도 특이해 재밌지만, 무엇보다 가장 관심을 끄는 것은 사도세자의 죽음을 매개로 벌어지는 왕권과 신권(臣權)의 격렬한 대립이다. 특히, 이 글의 관점은 특별한 악인을 전제하지 않는다. 책 속에 당시를 사는 인물들은 오로지 자신들이 믿는 세상의 진리를 위해 온 힘을 다해 싸운다. 그것은 어쩌면 사욕에 기반한 것이기도 하지만 당시에는 그것이 일종의 선비정신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세상에는 선명하게 드러나는 선과 악의 싸움이 별로 없다. 대개는 각자가 믿는 선의 충돌이 있을 뿐이다. 물론 객관적 관점에서 시시비비야 있을 수 있지만 ‘나는 惡이다’라며 스스로 공언하는 이가 얼마나 있을까? 각자 자기만의 善이 있을 뿐이다. 사실 인간이 철저하게 악해질 수 있는 것도 결국 이런 때가 아닐까 싶다.
주나라 시대의 성왕정치로 회귀하려는 정조와 그를 지지하는 남인세력들, 그리고 이를 반대하며 세상은 왕의 나라만이 아니라 그들(주로 노론 벽파겠지만)이 함께 만들어가는 것임을 믿는 심환지를 필두로 하는 노론 벽파의 팽팽한 대립은 마치 현대의 쿠데타 과정을 보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그 속에 뼛속까지 강직하고 충직한 관리의 전형을 보이는 이인몽이란 인물이 함께 한다. 정조의 총신이자 시대의 희생양이 되어버린 그는 오로지 왕을 위한 신하였으며, 성왕의 정치를 꿈꾸는 사람이었다. 끝까지 자신의 왕을 그리워하며 세상을 떠나는 인몽을 보며 당대의 애절한 한 인간으로서의 전범을 보는 듯하다. 어느 누군들 자신이 사는 세상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을까.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당쟁은 늘 단순하게 이익집단의 다툼으로만 비쳐진다. 그 속에도 사람이 있음을 보여준다는 측면이 내겐 기억으로 남을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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