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말하다>
문화심리학자라고 한다. 김정운 교수라는 이름을 별로 들어 보지 못했었는데 알고 보니 꽤 유명한 사람이다. 명지대 교수에, 우리나라 여가운동의 권위자에, TV에도 나오는 명강사라고 한다. 덕분에 짧은 TV동영상 강좌까지 들어봤다. 확실히 그는........ 재미있다.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제목만 봐도 성공할만한 책이다. 참 과감하고도 과격한 단어선택이다. 실상 그 내용을 짐작치 못할 바는 아니었지만 그 절묘한 선택에 경의가 느껴지기도 했다. 기존 저자의 책을 보며 일부 이 책과의 중복이 있음을 알았지만, 그래도 처음 본 김정운 교수의 책은 매력적이다. 그가 주장하는 ‘몸과의 접촉에서 뇌가 느끼는 강도’와 같은 부분, 혹은 ‘감탄’, ‘중년남자의 재미’, ‘리츄얼(의식)’ 등은 꽤 재미있는 주장이고 신선하고 설득력도 있어 보인다.
무엇보다 딱딱하고 재미없기 쉬운 이야기를 특유의(아마도...) 문장력으로 재미있게 풀어낸 솜씨에 감탄했다. 개인적으로 인문교양서를 읽으며 웃어본 것이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는데 그 점에서 이 책은 나를 웃겼다.
웃음 속에 재미, 그리고 간과할 수 없는 진지함이 느껴지는 부분은 확실히 이 책의 강점이다. 굳이 아쉬운 점이 있다면, 너무나 독특한 저자의 생각과 이력이 이 시대의 보통의 중년 남자인 내게 주는 이질감 같은 것이 좀 있었는데, 그렇다고 이 책의 미덕이 가려지는 것은 아니었다. ‘나는 아내와의 결혼을 후회한다’는 제목을 빌려 ‘이 땅의 중년남성들에게 고함’을 보내는 김정운 교수의 메시지다.
마음에 남다>
- 행복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행복을 구체적으로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침실의 ‘백열등 부분조명’과 ‘하얀 침대시트’처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직접 느낄 수 있게 정의할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전문 용어로 ‘조작적 정의(operational definition)'라고 한다.(p.19)
- 리추얼(Ritual)은 일상에서 반복되는 일정한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형태상으로는 습관과 리추얼은 같은 현상이다. 그러나 이 둘 사이에는 아주 중요한 심리적 차이가 존재한다. 습관에는 ‘의미부여’의 과정이 생략되어 있다. 습관은 스스로도 인식하지 못한 채 그저 반복되는 행동패턴을 의미한다. 반면 리추얼에는 반복되는 행동패턴과 더불어 일정한 정서적 반응과 의미부여의 과정이 동반된다.(p.28)
- 닐 로즈 교수 <IF의 심리학>에 따르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와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의 결정적 차이는 ‘시간’이라는 것이다.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최근'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는 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전‘에 일어난 일과 관련되어 있다. 뒤집어 말하면, ’하지 않은 행동에 대한 후회‘는 오래 가는 반면, ’행한 행동에 대한 후회‘는 바로 끝난다는 이야기다. (p.38~39)
- 살아있는 이상, 우리는 반드시 후회를 하게 되어 있다. 그러나 어차피 후회를 해야만 하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짧게 하는 게 좋다. 그래야 심리적인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 짧게 후회하려면 ‘행동’해야 한다. 확 저질러버리는 편이, 고민하며 주저하다가 포기하는 것보다 심리적으로 훨씬 건강하다. 후회가 오래가지 않기 때문이다.(p.40)
- 기억은 언제나 자작극이다.(p.48)
- 기억에 관한 ‘흰곰’ 심리학 실험(p.52~53)
'흰곰‘은 우리가 원치 않는 기억이나 생각을 의미한다. 그 기억과 생각을 억압하면 할수록, 그것에 집착하게 된다.(p.53)
- 사는 게 재미없는 이 땅의 중년들이 몰두하는 현상들, 큰 가슴, 마라톤, 폭탄주, 피부자극서비스(p.57~68)
- 마흔 끝줄의 사내들이 정말 싱겁기 그지없는 음담패설을 나누며 키득거릴 수 있다는 것은 심리적으로 ‘자유로움’을 느낄 때만 가능한 일이다. 심리학자들은 행복을 가능케 하는 심리적 요인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이 ‘지각된 자유(perceived freedom)'라고 주장한다. 행복은 얼마나 자유로움을 느끼느냐에 달려 있다는 이야기다. 우리가 돈을 많이 벌고 높은 지위에 올라가고 싶은 것은, 많이 벌수록, 높아질수록 그만큼 ’자유로워질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p.75~76)
- 불필요한 것을 제거해나가는 망각과 더불어 얻어지는 지혜는 ‘통찰과 직관’의 능력이다.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척 보면 아는’ 능력이다. 논리적인 설명이나 합리적 근거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나면 현명한 결정이었음이 판명된다. 실제로 자신의 행위를 지나치게 합리적으로 판단하고 분석하는 사람은 자신을 더 불행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다.(p.88)
- 독일 최고의 두뇌집단이 모여 일하는 막스플랑크 연구소의 게르트 기거렌처 소장은 아예 한발 더 나아가, 우리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것이라고 믿고 있는 ‘합리성과 논리성에 근거한 판단’이 오히려 실패할 확률도 높고 결과적으로 우리를 불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직관과 느낌에 근거한 지혜로운 판단을 내릴수록 우리의 삶은 더 살 만한 것이 된다는 이야기다.(p.90)
- 과정을 즐기지 못하면 항상 불안하다. 타인의 완성된 결과와 내 미숙한 결과를 비교하기 때문이다. 이 땅의 사내들이 불안해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살면서 한번도 과정을 즐기는 법을 배우지 못했다.(중략) 이런 ‘결과 지향적 삶’에는 어떠한 즐거움도 없다. 결과를 이루는 순간, 또 다른 결과를 계산해야 하기 때문이다.(p.109)
- 문화심리학적으로 보면, 명함을 건네는 행위의 이유는 아주 단순하다. 서로의 권력관계 서열을 정하기 위해서다. 서열이 정해져야 상호작용의 룰이 정해지기 때문이다.(p.142)
- 사는 게 재미있으면, 일하는 게 재미있으면, 근면·성실하지 말라고 해도 근면·성실해진다. 순서를 바꾸라는 이야기다.(중략) 21세기에는 ‘지금’ 행복한 사람이 ‘나중에도’ 행복하다. 지금 사는 게 재미있는 사람이 나중에도 재미있게 살 수 있다. 21세기의 핵심가치는 ‘재미’다. 노동기반사회의 핵심원리가 근면·성실이라면, 지식기반사회를 구성하는 핵심원리는 재미다.(p.153)
- 독일의 극작가 브레히트는 예술적 작업의 특성을 ‘낯설게 하기’라고 했다.(중략) ‘창조’든 ‘창의’든 간에 지식기반사회의 가장 중요한 원리는 익숙한 것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낯설게 하기’다. 이를 심리학적 개념으로는 ‘맥락적 사고를 한다’고 한다.(p.155)
- 나는 한 사람이다. 그러나 맥락이 어디냐에 따라 나는 권위적이고, 잘난 체하고, 비겁하고, 자상하고, 엄격하고, 재미있는 사람이 된다. 이 사회적 맥락에 대한 인식이 부재할 경우 상황은 매우 심각해진다. 엄격해야 할 때 비겁해지고..(중략) 성공처세서의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맥락에 관한 어떠한 인식도 없이 자꾸 ‘너를 바꾸라’라고 하니, 특정 맥락에 가면 전혀 의도하지 않은 황당한 결과가 나오게 되는 것이다.(p.160)
- 이야기가 있는 삶은 행복하다. 골프 이야기는 즐겁다. 낚시 이야기는 가슴 설렌다. 그러나 골프 이야기, 낚시 이야기 외에는 달리 나눌 이야기가 없는 남자들의 삶은 참 슬프다.(p.181)
- 자신에 대해 할 이야기가 별로 없다는 것은 사는 재미가 없다는 뜻이다. 모여 앉으면 누가 아파트 팔아서 돈 번 이야기나 주고받는 삶은 삶이 아니다. 자기가 찾은 작은 즐거움에 관해 가슴 벅차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삶이 진짜다.(p.196)
- 인간의 기초적 상호작용 형태인 의사소통은 두 가지 원칙에 의해 유지된다. ‘순서 바꾸기’와 ‘관점 바꾸기’가 바로 그것이다.(p.200)
- 일단 ‘순서 바꾸기’다. 내가 이야기하면 상대편에게 순서를 넘겨줘야 한다.(중략) 누군가와 대화를 하다가 기분상하는 느낌이 드는 경우는 대부분 이 ‘순서 바꾸기’가 망가졌을 때다.(중략) ‘순서 바꾸기’가 망가지는 가장 큰 이유는 불안이다. 자신의 이야기가 상대방의 마음을 움직일 수 없다는 불안 때문에, 계속 반복해서 자기 이야기만 하는 것이다.(p.200~203)
- '관점 바꾸기‘는 상대방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이다.(중략) 최근의 발달심리학 이론에 의하면 타인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는 능력은 네 살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그러나 네 살이면 가능한 이 ’관점 바꾸기‘ 능력이 사회적 지위가 높아지면 높아질수록, 하는 일이 성공적이면 성공적일수록 사라진다. 과도한 자기확신으로 인해 타인의 관점이 존재한다는 사실조차 인정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이런 문제는 주로 자수성가한 사람들에게서 나타난다.(p.204~205)
- 자신이 정한 원칙에 따라 앞뒤를 철저하게 계산하여 행동하는 원칙론자를 심리학에서는 ‘맥시마이저(Maximizer)'라고 부른다. (중략) 반대로 상황론자들은 ’새티스파이저(Satisfiser)'라고 부른다. 웬만하면 만족하려는 경향을 지녔기 때문이다.
이 둘을 비교해보니 ‘새티스파이저’쪽이 주관적 행복감을 더 느끼며 편안한 삶을 산다고 한다. 반대로 ‘맥시마이저’는 완벽주의에 대한 편집증과 자책감에 빠져 삶의 만족도가 현격하게 떨어진다고 한다.(p.253)
- 정말 행복하기 위해서는 ‘쉬는 것’과 ‘노는 것’을 구분할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쉰다는 것은 내면의 나와 대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중략) 쉰다는 것은 이렇게 내 안네 숨겨진 ‘또 다른 나’를 찾아내는 것이다. (중략) 논다는 것은 내가 좋아하는 일에 몰입하는 것이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것에 푹 빠져 나 스스로를 망각하는 수준에까지 이르러야 정말 놀았다고 할 수 있다.(p.270~271)
- 한마디로 아기는 ‘엄마의 감탄’을 먹고 자란다. 전쟁고아를 데려다가 아무리 잘 먹이고 잘 입혀도, 이 아이들의 발달은 다른 아이들보다 훨씬 늦다. 전 세계적으로 이미 수없이 확증된 연구 결과다. 자신의 변화를 보고 감탄해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p.282)
- 내가 지금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가의 기준은 아주 간단하다. 하루에 도대체 몇 번 감탄하는가다. 사회적 지위나 부의 여부와 관계없다. (중략) 일정수준의 돈은 필수적이다. 그러나 어떤 한도를 지나치게 되면 돈은 내게 더 이상 감탄을 주지 않는다. 걱정과 불안의 원인이 될 뿐이다.(p.290)
'독서노트'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슬럼프 심리학/ 한기연 著 (0) | 2011.09.30 |
---|---|
안돼! 부장님 설득의 비법/ 데이브 그레이 著 (0) | 2011.09.16 |
크러쉬 잇(CRUSH IT) / 게리 바이너척 著 (0) | 2011.07.23 |
내 몸을 살리는 면역의 힘/ 아보 도오루, 오니키 유타카 著 (0) | 2011.07.07 |
영원한 제국/ 이인화 著 (0) | 2011.06.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