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의 레벨
야구에 에이스(Ace)란 용어가 있다. 팀을 대표하는 투수다. 대개 한 팀에 한,두 명 정도가 존재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이 에이스를 구분하는 기준 중에 재미있는 것이 있다. 바로 ‘컨디션이 나쁠 때 어떻게 공을 던지는가?’ 하는 것이다.
평범한 투수도 공이 손에 ‘긁히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아무도 그의 공을 쉽게 치지 못한다. 그러나 이런 날이 자주 있지는 않다. 그렇지 못한 날은 아주 형편없이 무너지기 일쑤다. 이런 이들은 에이스가 될 수 없다.
에이스들도 ‘긁히는 날’은 타자들이 공략하지 못함은 물론이다. 그러나 정작 컨디션이 나쁜 날도 이들의 공략은 쉽지 않다. 자신이 나쁜 상태에 있더라도 최소한의 점수로 자기책임을 다 하는 투수를 진짜 에이스라 부른다.
글쓰기를 하다보면 글이 거의 저절로 써지는 날이 있다. 이런 날은 막 달린다. 그런데 보통 은 글이 머릿속을 관통하지 못하는 날이 훨씬 더 많다. ‘쓸 거리’도 없고, 어떻게 글감을 잡아도 ‘글쓰기’가 뜻대로 되지 않는다.
글쓰기에도 레벨이 있다면 바로 이때 차이가 나는 것 같다.
나는 이제 프로와 아마추어의 어느 사이쯤 애매한 구석에 있는 사람이지만 글을 잘 쓰는 이들, 혹은 프로라 불리는 작가들의 이야기를 많이 보고 듣는 편이다. 그런데 이들의 특징은 글이 잘 안 되는 날도 ‘어떻게든 꾸역꾸역’ 쓴다는 것이다.
돌아가신 변화경영연구소의 구본형 선생은 작가라고 불리고 싶은 사람은 ‘매일 써야만 하는 사람들’임을 강조한 적이 있다. 철학자 강신주 역시 ‘몸 상태가 최악일 때 나오는 글이 저자의 퀄리티’라고 주장한다. 그는 술을 마시건 무엇을 하건 하루에 A4 한 장 분량의 글은 반드시 쓴다고 한다.
글이 따라줄 때 글을 쓰는 것은 누구라도 한다. 한동안 첫 책과 두 번째 책을 낼 때 나는 글이 써지지 않아도 새벽이면 컴퓨터와 마주 않곤 했다. 그 덕분에 부족한 책이나마 두 권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글쓰기의 수준이 내려갔다. 글의 내용은 미뤄두더라도, 꾸준한 쓰기가 되지 않는다. 이래서야 글이 늘 리가 없다. 모자란 경험에도 글이 느는 느낌과 글이 맛이 가는(?) 느낌은 생생하게 와 닿을 때가 있다.
많이 쓸 때 많이 늘고, 적게 쓸 때 제대로 된 글도 적어진다. 이 평범한 진리가 글쓰기의 레벨을 결정한다.
언제쯤 나아질지 모르지만 나는 글을 쓴다. 좋아하기 때문에, 억지를 써서라도 나보다 앞선 이들이 남긴 흔적을 쫓고 싶어 컴퓨터 앞에 앉는다. 언젠가 띄엄띄엄한 이 글쓰기를 매일같이 할 수 있는 날들이 이어질 때 나도 조금은 더 좋은 작가가 될 수 있음을 기대하면서 오늘도 되지 않는 글과 씨름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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