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이 아름다웠던 한국영화들
외국에는 뮤지컬 영화란 분명한 장르가 있다. 그리고 우리가 이름만 들어도 알 만한 수작들이 많이 있다.
어린 시절 명화극장, 주말의 명화 등의 영화프로그램을 통해 봤던 ‘사운드 오브 뮤직’, ‘웨스트사이드 스토리’, ‘쉘부르의 우산’, ‘마이 페어 레이디’, ‘그리스’ 등 오래 된 영화를 비롯해 최근까지도 ‘맘마미아’, ‘레미제라블’ 같은 영화까지....꾸준히 외국에서는 뮤지컬 영화란 영역이 만들어지고 있다. 거기에 한 술 더 떠 ‘겨울왕국’ 같은 영화는 사실상 만화 에니메이션임에도 불구하고 음악으로 인해 더욱 유명해진 것이 아닐까 할 정도로 음악을 좋은 영화를 만드는 구성요소로 잘 활용되고 있는 것 같다.
그에 비해 아쉽게도 한국영화는 본격 뮤지컬 영화라고 할 수 있는 것에 대해 기억이 거의 없다. 워낙 내 견문이 좁은 탓일 수도 있으나 그만큼 본격적으로 음악을 다룬 영화가 적었던 탓일 게다.
다만, 그런 와중에도 음악이 좋은 영화는 간혹 만나게 된다. 뮤지컬 영화와 차이는 분명하지만 음악이 주요 메시지가 되는, 좀 더 정확히는 영화음악이 좋았던 한국 영화 다섯 편을 추억해 본다.
1 . 와이키키 브라더스
왜 이 영화가 그렇게 기억에 남는지 정확히 지금도 이유를 말하기 어렵다. 인생의 고달픔, 스산함을 이렇게 잘 표현한 영화를 잘 알지 못한다.
임순례 감독의 영화를 많이 보지 못했지만, 사실 임감독의 작품 중 가장 많이 알려진 ‘우리생애 최고의 순간’보다 나는 이 작품을 더 좋아한다.
남성밴드 4인조 와이키키 브라더스의 리더인 성우(이얼)가 출장 밴드로 연명을 하다 결국 고향 수안보로 귀향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음악을 사랑하지만 현실에 부딪혀 좌절하는 멤버들의 갈등, 그리고 고향에 도착해 만난 옛 친구들이 생활을 위해 전혀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들을 보며 어쩔 수 없는 위화감을 느끼게 된다.
그 속에서도 끝끝내 음악이라는 끈을 놓지 못하는 사람들, 잔잔하고 일상적인 화면 속에 배우 이 얼, 오지혜의 마지막 장면은 이유도 설명하기 힘든 데, 부정할 수 없는 ‘울컥’한 기분을 들게 한다.
아마도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심수봉의 ‘사랑밖엔 난 몰라’라는 노래를 간혹 흥얼거리게 된 것은....
젊고 재능있는 배우, 황정민과 류승범의 풋풋한 모습과 대중인지도에 비해 놀라운 안정감과 관록의 연기를 보여주는 이얼, 오지혜 등의 연기가 인상적이다.
주로 7~80년 대의 팝을 중심으로 노래들이 흘러나오는데 익숙한 음악이 주는 느낌이 묘하다. 그립기도 하고, 약간 울적하기도 하다. 특히, 이 영화는 마지막 오지혜의 노래 ‘사랑밖엔 난 몰라’ 그 한 곡의 장면만으로도 강렬하다.
설명을 하다 보니 이 영화를 제대로 보지 못했다는 느낌이 든다. 아무래도 다시 한 번 찾아서 봐야 할 모양이다.
2, 라디오 스타
“이젠 당신이 그립지 않죠. 보고 싶은 마음도 없죠...우우~” 이 가사만으로도 기억이 나는 영화 ‘라디오 스타’....
개인적으로 박중훈이란 배우를 오랜 기간 보아왔지만(영화 ‘깜보’시절부터니 정말 오래 되긴 했다), 호불호는 특별히 없었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고 나서 박중훈이란 배우가 확실히 호감인 배우로 돌아섰다고나 할까.
감독 이준익, 배우 안성기, 박중훈이면 일단 그림의 안정감은 의심의 여지가 별로 없어 보인다. 나는 솔직히 배우보다 감독을 믿는 편인데, 대개 내가 본 이준익 감독의 영화는 실망보다는 잔잔한 만족감을 준 편이 훨씬 많았다.
이 영화 역시 잔잔한 삶의 감동이 따뜻한 음악과 함께 넘쳐 난다. 한때 최고의 록가수였으나 이제는 쇠락해진 스타 최곤이 영월방송국 행을 통해 매니저와의 우정, 영월의 소박한 사람들을 통해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찾는다는 스토리는 이준익 특유의 유머러스한 전개와 함께 기분좋은 감성을 깨운다.
여기에 음악을 담당한 방준석은 이 영화로, 제 6회 대한민국 영화대상 음악상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 이미 ‘텔미 섬씽’, ‘공동경비구역 JSA', ’주먹이 운다‘ 등으로 이미 이름이 알려진 실력파 음악프로듀서였다.
거의 대부분이 배경음악으로 노래가 있는 것은 ‘비와 당신’이 유일하다. 영화와 함께 섞여 있을 때 그 감성이 살아나는 음악들이다. 사실 영화가 내내 노랫소리로 도배되면 은근히 좀 피곤한 느낌이 들기도 하는데, 영화의 배경음악이 갖춰야 할 미덕을 잘 살린 게 아닐까 싶다.
3. 서편제
좀 젊은 분들이라면 전설 속의 영화 같은 제목일지도 모르겠다.
임권택 감독의 경우 워낙 많은 영화를 만들어 대표작에 대한 의견이 엇갈릴 수 있지만, 어떤 경우에도 빼기 힘든 대표작이 바로 이 서편제가 아닐까 싶다.
한국 영화사적으로 이미 더 이상 논의가 필요 없을 정도로 유명한 영화니 내용은 생략하자. 한국의 전통음악이 이토록 마음을 울릴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하다. 여기에 내가 개인적으로 이 영화의 음악을 즐기는 독특한 효용 하나를 추천하고자 한다.
산 정상, 혹은 다른 높은 곳에서 광활한 다른 지역의 풍광을 보면서 이 음악을 들어보길 권한다. 특히 구름 낀 산 정상에서 듣는 ‘천년학’이나 ‘유봉집 마루’를 듣다보면 내 핏 속에 숨은 한국인의 정서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 웅장함과 처연함, 고고함이 풍경과 어울릴 때 산 정상의 백미를 느끼실 수 있을 것이다.
(산책의 네 친구들, 좌로부터 이명호, 정호근, 김상중, 양진석)
4. 산책
이 영화는 일단 아는 분이 그리 많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오늘 소개하는 영화 중에서 가장 대중적으로는 인기를 끌지 못한 영화가 아닐까 싶다.
영화 ‘편지’로 97년 대박을 터뜨린 이정국 감독의 다음 작품이었던 이 영화는 영화 자체도 잔잔한 기쁨과 공감을 일으키는 작품이었지만, 이 영화의 음악을 위해 결성된 임시밴드 ‘김광석 밴드’도 그 당시 꽤 인상적인 활동을 보여주기도 했다.
김광석 밴드는 이정열, 윤도현, 엄태환, 서우영이라는 실력파 가수들이 모여 만든 일종의 한시적 프로젝트 그룹으로 이 영화의 주요 타이틀 곡인 ‘나무’를 불렀는데 이 노래는 지금도 나의 소중한 베스트 노래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이 영화에서 포크가수 이정열이 부른 ‘나를 불러줘’, ‘그대와 영원히’ 등 좋은 노래들이 OST에 많이 삽입되어 있다. 한때 이정열은 정말 노래를 ‘맛있게’ 부르던 가수였다. 특히 이 무렵의 이정열 노래를 듣고, ‘저 사람 누구야?’를 연발한 기억이 있다.
김상중이란 독특한 배우는 의외로 영화에서는 좋은 작품과 인연이 별로 없었다. 그런 김상중을 영화로 기억하게 하는 유일한 작품이 내겐 휴식같은 영화 ‘산책’이다.
후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 ‘즐거운 인생’ 같은 작품이 나오긴 했지만 음악을 사랑하는 중년의 이야기가 제대로 처음 부각된 영화는 이 산책이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꽃피는 봄이 오면에서 최민식)
5. 꽃 피는 봄이 오면
요즘 한국영화와 헐리우드를 동시에 평정해 가장 핫한 배우 최민식이 출연한 영화다.
교향악단 트럼펫 연주자를 꿈꾸었으나 음악에서의 성공도, 사랑도 실패한 현우(최민식)가 강원도 시골학교의 관악부 임시음악교사로 부임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가 주요 스토리다.
절망 속에서도 인간은 꽃을 피울 수 있음을 보여주는 이 영화에서 최민식은 음악을 통해 삶의 한 끝을 부여잡고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준다.
음악으로 아이들을 이끌면서 또 그 아이들로 인해 치유되고,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
지금도 희미하게 기억나는 것은 그가 엄마에게 ‘다시 시작하고 싶다’며 전화기를 부여잡고 울던 모습이다.
‘Spring in my heart’, ‘다시 처음이라오’ 등이 유명하지만, 모든 음악이 다 좋다. 당연히 OST는 강추다. 삶의 의미에 대한 진지한 성찰, 그리고 실수투성이인 인간을 껴안는 따스한 시선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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